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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프면 직장 쉴 수 있나? 제도 있어도 못 쉬는 가족들

입력 2026-10-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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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돌봄휴직은 무급, 대체돌봄 이용률은 1.65%…휴가·소득·서비스 따로 움직여

2018년 겨울, 국어교사 임한호 씨의 어머니가 인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임 씨는 “망설임 없이 휴직계를 제출했다.” 전문 간병인을 쓰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직접 곁을 지켰고,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학교로 돌아갔다.

이 사연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개최한 제2회 ‘나의 브라보! 순간’ 수기 공모전 희망상 수상작 ‘매달림의 시학’에 담겼다. 휴직은 임 씨가 직장을 완전히 그만두지 않고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도록 한 통로였다.

그러나 부모가 아프다고 누구나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돌봄휴직은 원칙적으로 무급이다. 일을 계속하자니 근무 시간 동안 부모를 맡길 서비스를 찾기 어렵다. 재직 중에 돌봄 시간을 확보하자면 소득이 끊기고, 소득을 유지하자니 돌봄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

법에 적힌 ‘쉴 권리’는 돌봄 가족의 실질적인 휴식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2025년 장기요양 가족휴가제를 이용할 수 있었던 수급자는 47만 6784명이었다. 실제 이용자는 7859명으로, 대상자의 1.65%에 그쳤다. 한국사회에서 부모가 아플 때 직장인은 정말 쉴 수 있을까?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부모가 아플 때 쓸 수 있는 세 가지 제도

직장인이 가족을 돌보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제도는 상황에 따라 나뉜다. 급하게 병원에 동행하거나 며칠간 돌봄이 필요하면 가족돌봄휴가를 신청할 수 있다. 조부모·부모·배우자·배우자의 부모·자녀·손자녀의 질병이나 사고, 노령 등이 사유다. 연간 최대 10일을 하루 단위로 나눠 사용할 수 있다. 이 기간은 가족돌봄휴직 한도에 포함된다.

돌봄이 장기화하면 가족돌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연간 최대 90일이며, 나눠 사용할 때는 한 번에 30일 이상이어야 한다. 휴직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된다. 사업주는 원칙적으로 휴직을 허용해야 한다. 다만 계속 근로기간이 6개월 미만이거나 다른 가족이 돌볼 수 있는 경우,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했거나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이 생기는 경우 등에는 거부할 수 있다.

퇴사나 장기휴직 대신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가족의 질병·사고·노령으로 돌봄이 필요한 근로자는 주당 근로시간을 15~30시간으로 단축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기간은 기본 1년이며, 합리적인 사유가 있으면 추가로 2년 범위에서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다만 계속 근로기간이 6개월 미만이거나, 사업주가 구인 신청 후 14일 이상 대체인력을 구하려 했지만 채용하지 못한 경우에는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 업무를 나눠 수행하기 어렵거나 정상적인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이 생기는 경우, 이전 근로시간 단축이 끝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도 예외에 해당한다.

쉴 권리는 있어도 소득은 보장되지 않아

가족돌봄휴가와 휴직은 법에 사용자의 임금 지급 의무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서 유급으로 정하지 않았다면 일반적으로 무급이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하지 않은 시간만큼 임금도 감소할 수 있다.

직장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마련했지만, 그동안의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할지는 가정의 몫으로 남겨둔 셈이다. 육아휴직에는 고용보험을 통한 급여가 지급되는 것과 달리 가족돌봄휴직에는 이에 상응하는 보편적인 소득보전 장치가 없다.

휴직이 가능한 근로자라도 수개월 동안 소득이 끊기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신청을 포기할 수 있다. 고용 형태와 직장 규모, 가계의 여유에 따라 같은 법적 권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달라지는 이유다.

회사가 휴가를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해당 업무를 대신할 인력과 복직 뒤 불이익을 막는 조직문화가 마련되지 않으면 근로자는 인사평가와 승진, 동료의 업무 부담을 걱정하게 된다. 법적으로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부담 없이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직장 휴가와 장기요양 가족휴가제는 다르다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장기요양 가족휴가제는 직장에 요청하는 휴가가 아니다. 치매 또는 중증 장기요양 수급자를 돌보는 가족이 잠시 쉴 수 있도록 단기보호나 종일 방문요양을 제공하는 장기요양보험 제도다.

단기보호는 수급자가 일정 기간 기관에 머물며 돌봄을 받는 방식이다. 종일 방문요양은 요양보호사가 수급자의 집을 찾아 장시간 돌보는 서비스다. 직장인이 가족돌봄휴가나 휴직을 통해 시간을 확보하는 동안, 부모를 대신 돌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이용자 7859명 가운데 단기보호 이용자는 2161명, 종일 방문요양 이용자는 5698명이었다. 이용률은 2016년 0.07%에서 2020년 0.40%, 2023년 0.48%, 2024년 0.94%로 상승했지만 2025년에야 1%를 넘어섰다.

정부는 2024년 가족휴가제 대상을 치매 수급자뿐 아니라 치매 여부와 관계없이 장기요양 1·2등급 수급자 전체로 확대했다. 2026년에는 이용 한도가 단기보호 연 12일 또는 종일 방문요양 연 24회로 늘었다.

2025년 종일 방문요양 제공이 가능한 기관은 3344곳이었으나 실제 제공 실적이 있는 기관은 532곳, 15.9%에 불과했다. 단기보호도 제공 가능 기관 508곳 가운데 170곳만 서비스 실적이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나머지 기관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이유를 별도 통계로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용률 1.65%만으로 가족에게 휴식 수요가 있었는데도 모두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제도의 대상과 한도를 늘리는 것만으로 실제 이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드러난다. 어느 지역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예약 대기는 얼마나 긴지, 제공기관이 왜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간병 때문에 퇴사하면 실업급여 받을까

휴가와 휴직, 근로시간 단축으로 버티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자발적으로 퇴사하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가족간병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정당한 이직 사유로 인정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안내에 따르면 부모나 동거 친족의 질병·부상으로 본인이 30일 이상 간호해야 하고, 회사 사정으로 휴가나 휴직이 허용되지 않아 퇴사한 경우 수급자격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 단순히 “부모를 돌보려고 퇴사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최소 30일 이상 간호가 필요하다는 진단서나 소견서, 본인 외에는 돌볼 사람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주민등록등본이나 가족관계증명서, 다른 가족의 재직증명서 등과 회사에 휴직을 요청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는 사업주 확인서 등이 필요하다. 최종 인정 여부는 관할 고용센터가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간병 퇴사를 생각한다면 사직서를 내기 전에 회사에 휴가·휴직 또는 근무조정을 서면으로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두로만 문의하고 퇴사하면 이직을 피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구직급여는 일과 돌봄의 병행을 돕는 제도라기보다 고용관계가 끊어진 뒤 작동하는 사후 안전망에 가깝다. 가족이 일을 유지하도록 돕지 못한 뒤, 퇴사가 불가피했는지를 다시 당사자에게 입증하도록 하는 구조다.

▲자료: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전진숙 의원실 제출자료(2026)(이미지=AI 생성)
▲자료: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전진숙 의원실 제출자료(2026)(이미지=AI 생성)

휴가·소득·대체돌봄이 따로 움직인다

현재 가족돌봄 제도는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고용제도는 휴가·휴직을 신청할 권리를 주고, 장기요양보험은 가족 대신 수급자를 돌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용보험은 돌봄 때문에 불가피하게 퇴사한 일부 근로자에게 구직급여를 인정한다.

각 제도는 존재하지만 서로 맞물려 움직이지 않는다. 회사에서 휴직을 허용해도 소득이 끊기면 쉴 수 없다. 무급 기간을 견딜 수 있어도 부모를 맡길 기관이 없으면 가족은 간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감당하지 못해 퇴사하면 휴직과 대체돌봄을 이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까지 직접 증명해야 한다.

책임은 가족 한 사람에게만 물을 수 없다. 정부는 휴직기간의 소득보전과 장기요양 서비스 공급을 함께 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휴가를 서류상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체인력과 업무 인수인계, 복직 뒤 불이익을 막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지방자치단체에는 지역별 제공기관과 이용 가능 여부, 대기 현황을 파악해 이용자에게 안내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서비스 제공기관의 책임도 살펴야 한다. 다만 인력 부족이나 낮은 수가 때문에 종일 방문요양과 단기보호를 운영하기 어렵다면 개별 기관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 제공 실적이 없는 기관이 왜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지 정부가 파악하지 않는 한 이용률을 높일 해법도 찾기 어렵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앞서 2026년 4월 1일 온라인 기사 ‘“부모 돌봄, 퇴사만 답 아니야” 일과 돌봄 양립 방법은?’에서 일본 사이타마현의 ‘일과 돌봄의 양립 사례집’을 소개한 바 있다. 일을 계속하면서 부모 돌봄을 이어간 9명의 사례는 가족이 모든 돌봄을 떠안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줬다. 부모를 직접 돌보는 것과 일을 그만두는 것을 같은 선택지로 놓지 않으려면 개인의 각오보다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부모가 아프면 직장인은 쉴 수 있다. 쉴 권리는 이미 만들었다. 급할 때는 가족돌봄휴가, 장기화하면 가족돌봄휴직, 일을 이어가려면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할 수 있다. 간병 때문에 불가피하게 퇴사했다면 구직급여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쉴 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득이 유지되고, 업무를 대신할 사람이 있으며, 가족의 돌봄을 맡길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세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휴가는 가족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비용이 된다. 이제는 가족이 실제로 쉴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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