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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연밥을 보며

기사입력 2019-01-14 09:48

얼어버린 호수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의연하게 서 있는 연밥 하나가 시선을 끈다.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고 벌집 같은 얼굴을 내밀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던 연밥이다. 마른 줄기 하나에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사색에 잠겨 있다. 한 점 조각품이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들어온 연밥의 모습을 보며 일흔 살에 접어든 내 얼굴을 떠올려본다.

▲변용도 동년기자 촬영
▲변용도 동년기자 촬영

40세 이후에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꽃다운 나이에는 누구나 아름답다. 꿈도 많고 청순함과 젊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둘 늘어나는 욕심에 청순함은 때묻고 팽팽하던 살결은 어느 사이 굴곡진 주름으로 변해간다. 맑았던 눈동자도 흐려지고, 작은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50대 중반쯤, 고향 ‘청학동’을 다녀오다가 만난 너무도 고운 자태의 칠순 할머니를 보고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다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연배의 길목에 서 있다. 이후에도 편안한 얼굴을 만나면 그 각오를 다지곤 했다. 미소 머금은 얼굴,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얼굴은 보기만 해도 평화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이면 다 보시(布施)라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서는 무재칠시(無財七施), 즉 재물이 없어도 누구나 보시할 수 있는 일곱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친다. 밝은 미소로 상대를 대하는 것도 그중 하나로 들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굵은 주름살이 삶의 지혜로 보이면 좋겠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은신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말을 느리게 해도 은근히 힘이 실려 있는 목소리를 갖고 싶다. 젊은 날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일들에도 남모르는 사정이 있을 거라며 한 번 더 생각하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겨울 호수에서 본 연밥 한 송이에서도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생각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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