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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제자 이야기

기사입력 2018-06-08 15:36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으로 영어를 배우러 오는 50세 독신녀 제자가 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심하게 앓아서 두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해 목발로 걷는다. 초등학교까지는 엄마가 업어서 다녔다고 했다. 성장을 하고 덩치가 커지자 어머니의 등에 더 올라탈 수 없었다. 자가용 자동차도 흔하지 않던 시절,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어 그만두었다. 대신 집에서 엄마와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고급과정까지 피아노를 배운 제자는 10년 전부터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영어를 배우고 싶었던 제자가 동네 복지관에 문의했고 마침 복지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나와 연결해주었다. 처음에는 혼자 몸도 가누기 힘들어 보여 몇 번 오고 마는 거 아닐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끈기가 대단했다. 지금까지 쭉 영어를 배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제자는 수업료 대신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 대접을 한다. 지난주에는 함께 서울 숲 근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제자(왼쪽)와 함께 나들이.(안영희 동년기자 사진 제공)
▲제자(왼쪽)와 함께 나들이.(안영희 동년기자 사진 제공)

아이들이 너무 영어를 잘해서요

알파벳만 겨우 알던 제자는 학원으로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영어를 너무 잘해서 주눅 들곤 했다. 그 마음에 영어를 배워볼까 생각했던 모양이다. 영어 학원에 다닐까도 생각했지만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용기를 내어 복지관 문을 두드렸고 나와 스승과 제자의 연이 돼 영어를 접하게 됐다.

음악 감각이 뛰어난 제자의 특성에 맞춰 영어 동요로 수업을 진행했다.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 제자의 실력은 고등학생 정도까지 올라왔다. 요즘은 Gucci(구찌), Louis Vuitton(루이뷔통) 같은 유명 브랜드의 이름을 읽고 말할 수 있고 또 자기 친구에게도 가르쳐 준다고 자랑한다. 나는 제자와 수업하면서 영어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눠주려고 노력했다. 제자는“선생님 덕분에 제가 지식인이 된 것 같다”며 “교양의 9할은 선생님께서 전수 한 것”이라고 말끝마다 고마워한다. 또 여러 가지를 아는 체하고 사는 게 은근히 재미있다고도 했다.

그녀가 참 대단한 것은 소아마비로 평생 목발을 짚고 다니는 장애인이지만 구김 없다는 점이다. 그녀를 업어 키우고 피아노에 입문시킨 어머니의 가르침이 컸다. 몇 해 전 돌아가셨다는 어머니는 늘 딸에게 당당함을 일깨웠다. 항상 예쁘게 하고 다녀라, 싸구려 식당은 가지 말라. 장애인이란 상황에 대접받지 못할 바에 제값 내고 떳떳하게 대우받으라는 뜻이었다. 어딜 가든지 팁을 넉넉하게 주어서 자기를 기억하게 만들라고도 했단다. 훌륭한 엄마의 가르침이 의지력 강한 딸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힘이 아닐까 싶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그녀와의 수업이 나 또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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