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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가족 탄생

기사입력 2018-05-16 09:02

▲누렁이와 깜냥이(한미숙 동년기자)
▲누렁이와 깜냥이(한미숙 동년기자)
가족들이 주고받는 ‘단톡’방에 아들애가 보낸 사진과 글이 떴다. 생후 한 달쯤이나 지났을까 싶은 새끼고양이 두 마리다.

“공사판에서 주움”

톡을 확인한 필자와 남편, 딸애가 각자의 공간에서 이모티콘이나 글을 올렸다. ‘에미가 찾을 텐데 새끼가 있던 자리에 다시 놔줘라, 까페에 올려서 입양할 곳을 알아봐라, 지금 뭘 먹고 있나, 귀는 깨끗한가, 화장실 준비는?...’

아들애는 새끼고양이를 주워 온 즉시 밥(사료)과 모래를 준비했단다. 두 마리가 함께 있으니 집을 비워도 부담이 덜 하고 서로 별 탈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내가 고양이 털 빛깔로 ‘깜냥’이와 ‘누렁이’이로 표현하자 식구들은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면 정드니까 A, B로 하잔다. 자취하며 대학에 다니는 아들애는 한창 시험기간인데 어쩌다 길냥이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주워 온 곳이 공사장이어서 데려오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었단다.

우리는 저마다 속한 모임의 까페나 단체 카톡방에 깜냥이와 누렁이의 사연을 올렸다. 시간이 얼추 지나 한 지인한테 연락이 왔다. 검은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고 싶은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달란다. 아들애는 두 마리가 같이 입양되는 줄 알았다가 실망했다. 깜냥이가 입양되고 누렁이가 혼자 남으면 우리 ‘상냥이’와 같이 키워야겠다고 나는 내심 마음먹고 있었다.

상냥이는 작년 가을, 아들애가 집 근처에서 ‘냥줍(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뜻)’했다. 에미가 주변에 있을까봐 두고 봤는데,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아무래도 상냥이가 자기를 선택한 것 같다면서 키우게 되었다. 상냥이는 아들애 가운뎃자 이름과 길냥이의 냥이를 붙여 ‘상냥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난 겨울방학 때, 아들애가 상냥이를 집에 데리고 왔다. 마치 신생아를 맞이하는 것처럼 식구들 관심은 온통 상냥이에게 쏠렸다. 3색깔로 암놈인 상냥이는 저를 쓰다듬기라도 하면 손을 물었다. 에미한테 옮았는지 귀에는 진드기가 있었다. 엉덩이가 앙상할 정도로 영양상태도 부실했다. 두 애들이 번갈아가며 상냥이를 데리고 병원에 드나들었다. 진드기치료를 받고 영양제를 구입했다. 온라인을 뒤져 사료와 별개로 습식사료 캔과 짜먹는 닭고기맛 츄르, 건빵에 별사탕 골라먹듯 사료에 넣어주는 맛과자 등을 구매했다. 게다가 장난감은 흔들면 반짝이며 팔랑거리는 것과 불빛을 따라 뱅뱅 돌게 하는 것으로 지루함을 피하고 운동량을 생각해서 골랐다.

상냥이가 에미로부터 받아야 할 ‘사회화’가 덜 된 만큼 식구들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보살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날 상냥이 울음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알고 보니 발정이 난 것, 수술은 불가피했다. 날짜를 예약하고 수술하고 온 날, 플라스틱 깔대기가 상냥이 목에 둘러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스럽고 털 고르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허공에 몸짓만 계속 움직이는 게 안쓰러웠다. 딸애는 헝겊으로 된 에코백을 잘라 플라스틱 깔대기를 빼고 대신 씌웠다. 목 둘레가 번거롭긴 해도 훨씬 움직임이 유연했다. 소독하고 약을 먹이고 수술한 곳의 실밥을 풀러 병원에 가는 일을 겪으면서 상냥이는 점점 상냥스럽게 변해갔다.

상냥이의 ‘야~옹’ 하는 소리는 상황에 따라 감이 다르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냉큼 현관 앞으로 나와 꼬리를 바짝 세운다.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라는 표정으로 자기 몸을 슬쩍 비빈다. 간식을 줄 거라는 건 소리로 알아채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기대의 눈빛은 애절하다. 이제 저음으로 ‘앉아!’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앉은 자세를 하며 기다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울달린 쥐장난감을 물고 와서 ‘호~옹’한다. 제 딴엔 전리품을 내세우는 것 같다. 때로는 냉정하게 토라져서 혼자 고독한 뒷모습을 보인다. 식구들이 얼굴을 자기 얼굴에 들이밀면 분홍젤리같은 손바닥으로 살살 토닥인다.

상냥이는 이제 10개월 정도로 사람으로 보자면 질풍노도의 18세에 해당된다. 상냥이와 함께하며 우리의 생활영역은 예전 같지 않다. 문이 열린 어느 곳이든 침범하며 책상 위는 말할 것도 없고 책꽃이, 장롱, 냉장고, 에어컨 등 물건의 꼭대기는 모두 올라간다. 털은 또 어떤가. 바닥청소는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돌돌이’를 돌리고 박스테이프나 어쩌다 돌아다니는 스티커 등으로 털을 찍어낸다.

아들애가 깜냥이와 누렁이를 데리고 출발한다고 했다. 상냥이가 새끼고양이들을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 궁금했다. 새끼고양이와 9개월 정도의 차이가 있으니 에미처럼 돌봐줄지, 아니면 시샘과 질투를 할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됐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아들애한테 연락이 왔다. 출발하기 직전, 까페에 올린 글을 보고 동아리선배가 두 마리를 같이 입양하겠다고 했단다. 다시 가족톡의 알람이 계속 울렸다. ‘오~정말다행!!, 형제끼리 헤어지는 줄, 누군지 복받을 거얌’ 이라는 글과 이모티콘이 줄줄이 떴다.

어쩌다 한 식구가 된 상냥이는 고양이로 태어났으나 점점 개의 ‘충성심’을 보이고, 때로는 ‘냥냥’ 거리면서 간식을 내놓게 유도한다. 귀차니즘의 딸애가 날마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손톱을 깎아주며 눈곱과 코딱지 떼 주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든다. 아프면 보험이 안 되는 진료비를 충당해야 한다고 더 적극적인 아르바이트가 필요하다며 아들애를 움직이게 한다. 이 모든 걸 감내하고라도 우리는 날마다 ‘묘한 가족’의 매력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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