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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는 내 삶의 방향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 먼저다

기사입력 2017-12-04 10:08

[cover story] PART 02 맨손으로 귀촌한 사람들

언젠가 나는 어느 노인에게 들었다. 적게 먹고 가느다란 똥을 눠라! 청명한 게송이다. 가급적 물욕을 자제해 가뿐하게 살라는 뉴스다. 너무 많은 걸 움켜쥐지 않고 사는 게 현명한 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러기 쉽던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망나니는 주야로 날뛰어 기세를 돋운다. 돈으로 모든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달콤하게 속삭인다. 사실 돈의 위력은 막강하다. 돈을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만족의 수효가 워낙 많다. 적당한 정도의 돈이 있고서야 안정된 삶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더 채우려고 젊어서도 일하고 늙어서도 일하는 사람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도 많다. 정신, 마음, 사랑, 우정, 헌신, 자아실현 같은…. 자주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환장하게 만드는 돈의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돈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는 오해를 교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울러 돈이 부족할지라도 자족하며 살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귀촌은 그것의 한 대안일 수 있다. 덜 벌어 덜 쓰고도 기분 좋게 살아갈 여지가 많은 게 시골생활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골에서도 삶의 고역은 미행처럼 따라붙는다. 가난이 자심할 경우엔 더욱 그렇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지독한 궁핍은 으라차차 조속히 해치워놓고 볼 일이다. 배를 곯을 수는 없지 않은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조차 등한시하면서 만족과 행복을 구가하는 건 염치없는 짓이다. 그런데 우리가 괴로워하는 가난은 대개 절대가난이 아니다. 공들여 밥벌이를 하면서도, 이미 적당히 가졌으면서도, 마치 사막에 쓰러져 물을 갈구하는 사람처럼 엄살을 떤다. 더 가지려 하고 더 모으려 하고 더 채우려 한다. 젊어서도 일하고 늙어서도 일한다. 병들어 죽어가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한다. 이게 다 욕망이라는 놈의 농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채우고 또 채워도 허기지는 욕망의 뱃구레! 집요한 욕망의 간계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귀촌을 통해 한결 품질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 뭐, 그런 내공의 소유자라면 도시에서도 끄떡없겠지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흔히들 내가 하고 싶은 걸 내가 하며 사는 걸 그 답으로 꼽을 것이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걸 내 멋대로 하며 신바람 나게 사는 인생. 그런 삶에 관한 소망엔 아무런 결함이 없다. 그러나 실천엔 아둔하거나 나약하다. 여건을 완비한 뒤에 나를 위한 인생을, 내가 원했던 일을, 그제야 비로소 신나게 즐기며 살아보겠다는 소심한 전략을 평생 지속하기 십상이다. 그 여건이라는 건 대개는 돈이다. 해서,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도시라는 사각 링에서 코피를 쏟아가며 복싱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스스로 탕진하는 꼴이다. 돈이 많아야 뭐든 누릴 수 있다는, 축재가 있고서야 행복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지속하는 사이에, 시간도 건강도 꿈도 손아귀에서 새나가는 모래처럼 흘러 덧없이 사라진다.

각설하고! 아무튼, 덜 벌어 덜 쓰고서도 기분 좋은 삶을 누릴 수도 있는 게 시골이다. 돈 들어가지 않는 행복과 해후할 수 있는 게 귀촌이다. 아마도 조물주께서 낮잠을 주무시다 깨어 대충 빚어놓은 게 인간이라는 작품일 텐데, 이 진기한 피조물이 돈의 노예로 살라 하명을 받은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볼 만한 곳도 산골이다. 독특한 사례 하나를 볼까.

지금 뭐하는 거냐, 제대로 살아보자”

월 생활비 달랑 20여 만원을 쓰며 아내와 함께 시골에서 유쾌하게 살았던 사나이 S.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던 그는 어느 날 덜컥 느낀 바 있어 귀촌을 했다. 귀촌 첫해엔 빈집에 세 들어 살다가 재미가 붙자 손수 흙을 버무려 방 하나, 부엌 하나짜리 오두막을 지었다. 오두막 안엔 냉장고나 TV 따위를 두지 않았다. 아예 전기를 들이지 않고 촛불로 살았으나 나중엔 전기를 끌어다 전등을 썼다. 한 달 전기요금은 1000원 남짓. 검침원이 놀랐다지? “어라, 이거 계량기 고장 아녀?” 햐!

전자제품이 없으니 전기료 들어갈 일이 없었다. 대신에 연구를 해 요령을 터득했다. 일테면, 냉장고가 없으니 일단은 음식을 많이 만들지 않았고, 김칫독은 냇가에 묻어 냉장 효과를 거두었다. 그런 식으로 많은 실험을 해 불편을 해결해나갔다. 인디언처럼 말이다. S는 전기가 싫었다. 전기 없이 사는 게 지구라는 초록별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런 가상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서울에서의 어느 날, 석유문명의 위험을 다룬 다큐를 볼 때 찾아왔다. 머잖아 석유가 고갈되면 지구가 망할 것이라는 내용의 다큐. S는 쇼크를 먹고 곧바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 제대로 살아보자, 어떻게든 전기에 의지하지 않고 제대로, 스스로 사는 인간이 돼보자, 고민의 결론은 그랬고, 그는 즉각 산골로 내려갔다. 원래 귀촌을 바랐던 아내와 함께 말이다. 1000원어치의 전력만 소비하는 오두막의 나날들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내가 지금 거창한 일을 하는 거 맞지? 그런 자부심으로.

그런데 밥은? 거의 맨손으로 귀촌한 그는 무엇으로 생계를 해결했을까?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했다. 그렇게 살자는 애초의 계획을 잘 관철했다. 정 어려우면 잠시 도시에 나가 접시라도 닦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 두둑한 배짱과 여유라니. S는 희희낙락, 날마다 노래하며 오두막살이를 즐겼다고 한다. 노래가 있는 인생은 그의 오래된 꿈이자 이상이었던 것. 산골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끼적여 자작곡들을 지었고, 우쿨렐레 줄을 팅팅 뜯으며 베짱이처럼 노래하며 살았다. 그렇게 3년여가 지나자 싫증이 일어 다시 어디론가 향했는데 그게 또 시골이었다. 이번엔 빈집을 빌려 들어앉은 S의 생활 방식은 이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자급자족을 도모하며 날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를 거듭한 이 베짱이는 40대 중반이 돼 도시의 호명을 받고 정든 시골을 떠났다. 홀로 산골에서 부른 노래가 도시로 흘러가 애호가들이 생겨나서였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S는 현재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S는 돈 없이 시골에 살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았다. 행복하게 말이다. 그가 누린 귀촌생활상이 보편적인 건 아니다. 하지만 눈여겨볼 절경이 서려 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만족할 만한 삶을 구가해온 사람의 지향과 방식이 완연하다. 돈의 추구보다는 내 삶의 방향에 대한 믿음과 실천이, 시골의 자연 속에서 배양된 낙천적 감성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게 한다. 거의 모든 게 돈과 결부돼 돌아가는 대도시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라는 걸 읽을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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