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게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길

▲노래하는 사람, 1994, Jonathan Borofsky(미국, 1942~ ), 545cm x 160cm x 102cm (알루미늄, 음향설치, 전기모터)(이성낙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과천현대)은 사계절 어느 때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많은 방문객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특히 벚꽃 계절이면 미술관에 이르는 길목은 물론 주변을 폭 감싸 안은 듯한 산세(山勢)가 일궈내는 경치가 일품이다.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명소’의 하나로 손꼽힐 만하다.

며칠 전 보슬비가 내리는 가을 들녘의 경치를 생각하며 과천현대를 찾았다. 미술관 가까이 다가가자 정겨운 ‘으~앙’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왔다. 마치 멀리서 인기척을 들은 개[犬]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따라가니, 언제나 그렇듯 거인(巨人) 모습의 백색 대형 조형물이 ‘으~앙’ 하며 나를 반긴다.

이 조형물은 거대한 작품 제작자로 유명한 미국 조각가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 1942~)의 1994년 작품 ‘노래하는 사람(Singing Man)’이다[사진]. 필자가 처음 만난 보로프스키의 작품은 1980년대 미국 시애틀의 한 광장에 우뚝 서서 묵묵히 망치질을 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망치질하는 사람(The Hammering Man)’이었다. 이 작품은 그 후 세계 큰 도시에서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더니 2002년에는 서울 중심가에도 나타났다(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 빌딩 앞). 작품의 높이만 무려 22m, 무게 50t의 세계적 대형 조형물이 우리 곁을 찾아온 것이다.

보로프스키의 대표 작품 ‘망치질하는 사람’은 이른바 ‘움직이는 예술(Kinetic Art)’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와 달리 과천현대의 보로프스키 작품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리를 내는 작품’이다. 다른 차원의 ‘움직이는 예술품’이다. 그래서 더욱더 특별하다.

아마도 우리처럼 두 개의 보로프스키, 곧 ‘움직이는 거인’과 ‘노래하는 거인’을 가진 도시는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만큼 보로프스키는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욱더 과천현대에서 본 그의 작품이 ‘외롭게 노래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했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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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