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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섹남’이 되려면 주방으로 가라!

기사입력 2017-05-22 16:18

뭐 대수랄 게 있나? 오히려 추세 아닌가?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또 빨래 개고 등등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엔 어색했지만 막상 해보니 점차 재미있기까지 해서 ‘체질인가?’ 하며 속으로 놀라기까지 한다. 돌이켜보니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 부엌 근처엔 갈 일이 없었고 밤중에 보채는 아이들 업어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전에 없던 생각이 든다.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은 아이들, 뭐라도 직접 만들어 주고픈 아내. 소중한 가족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은 나이 탓일까?

깔끔하니 널찍한 공간, 테이블엔 준비된 식재료, 그리고 기분 좋은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강사님께 “오늘 잘 부탁드려요” 하고 미리 꾸벅 인사를 건네본다. 수술실 들어가는 의사인 양 손부터 깨끗이 씻는다. 맛은 둘째이고 위생이 먼저이리라. 그나저나 오늘 메뉴는 중식이라 했던가? 실습에 앞서 강사님께서 오늘 요리에 대한 상세한 설명부터 해주시는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옆자리 수강생이 제법 경험이 많은 듯 아는 체도 하면서 여유를 부리자 슬슬 오기가 생긴다. ‘좋아~ 어디 한 번 겨뤄보자고!’ 수강생들은 나긋나긋하면서도 강단 있는 강사님의 설명을 노트와 메모지에 급하게나마 받아 적어가면서 제법 진지하다. 물론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 하는 식으로 뒷줄에 계시는 그분은 여전히 ‘뒷짐모드’다. 도대체 왜 왔을까?

‘야채는 크기나 모양을 비슷하게 썰어야 보기가 좋고, 스크램블드에그는 부지런히 잘 저어주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토마토는 지용성이라 불에 볶아주면 체내 흡수율이 향상 된다’는 금과옥조 같은 강사님의 말씀을 일단 열심히 받아 적긴 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닐 듯싶다. 바로 이때 마치 사과 깎듯 옆으로 돌려가면서 감자를 깎고 있는 옆자리 수강생! 보다 못해 슬쩍 필러를 건네니 그제야 ‘썩소’를 날린다. ‘이건 뭐 나보다 훨씬 더 심하잖아?’ 우여곡절 끝에 깍둑썰기한 야채와 다진 돼지고기를 팬에다 볶기 시작하는데 차츰 재미가 있고 여유도 생겨나는 듯하다. 두 사람이 한 테이블에 실습을 하다 보니 눈치껏 '커닝'하는 재미도 있고 서로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으며 자연스레 공범이 된다. 자장면에 춘장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을 터, 자글자글 볶아둔 춘장과 물을 넣고 함께 끓인다. 이때 면발을 잘 삶는 게 포인트가 될 텐데 한 번에 푹 삶는 게 아니라 일단 끓고 나면 찬물을 부어 또 끓여야 면발이 쫄깃해진다고 한 것 같은데 강사님 제대로 받아 적은 거 맞나요?

오늘의 메뉴는 유니 자장! 결국 마지막 단계까지 왔고 먼저 미션을 완수하신 분들부터 강사님께 검사를 받는 시간이다. 과연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는 것, 즉 플레이팅도 중요하다는 총평을 하시면서 드디어 필자 차례가 왔다. 시식을 위해 한 젓가락 입에 넣는 바로 그 순간!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요리의 마지막은 시식 및 품평이 아니라 깔끔한 정리정돈, 즉 설거지로 완성된다는 강사님의 명언부터 전해드리며 뜸을 좀 들이겠다. 자, 어떻게 되었을까?

부담백배! 다음 번 요리강좌의 보조강사로 명받았다. 쏟아진 박수에 부푼 자신감은 아직도 뻐근하기만 하다.

살랑대는 봄꽃들의 유혹조차 죄다 뿌리치고 생면부지의 중년 남성들이 모여 근엄하게 혹은 진지하게 또 때론 서로 피식피식 웃어가며 좌충우돌 요리강습을 받은 오늘! 실습 도중 찍어둔 사진과 레시피를 정리해보며 아이들에게, 아니 아내에게 꼭 해주리라 다짐해보는데 어때요? 저란 사람, ‘뇌가 섹시한 남자’라 불러줄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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