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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L 칼럼] 따로 또 같이, 그리고 따로

기사입력 2016-05-07 10:48

브라보 마이 라이프 同年기자단 발족에 부쳐

▲맑은 선비들의 즐거운 모임을 묘사한 이인문(1745~1821)의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
▲맑은 선비들의 즐거운 모임을 묘사한 이인문(1745~1821)의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

4월 12일에 열린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동년(同年)기자단 발단식에서 저는 환영사를 겸해 몇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년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경위와 의미를 바탕으로, 모임이나 단체의 소속원들이 중시하고 지향해야 할 것을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날의 말과 지금 이 글은 ‘한가지 同에 대한 몇 가지 생각’입니다.

‘한 가지’는 띄어서 쓰면 여러 가지 중 하나라는 뜻이 되며 ‘한가지’라고 붙여 쓰면 형태와 성질 동작 따위가 같은 것, 즉 同이 됩니다. 사람은 모이면 한가지가 돼야 하지만, 저마다 한 가지로서의 구실과 역할을 하고 서로 잘 어울려야 그 한가지가 오래가고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를 의미하는 말은 참 많습니다. 동거 동기 동도(同道) 동문 동반 동복(同腹) 동사(同事) 동우 동인 동지 동창 동학, 이런 것들을 먼저 들 수 있습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동연(同緣)이라 하고, 함께 붓글씨를 배우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동연(同硯)이라고 부릅니다.

나이가 같은 사람은 동갑입니다. 동령(同齡) 동치(同齒) 동년(同年)입니다. 이 중 동년에는 동갑이라는 의미 외에 같은 때 과거에 급제해 함께 방이 붙은 동방(同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공모에 응해 시니어 기자가 된 분들을 동년기자라고 부르는 것은 선발 절차와 방식은 예전과 다를지언정 과거를 통과한 것에 버금가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각 분야의 전문가요, 삶과 일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한 분들이니 동년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이를 잊고 벗하는 망년지교(忘年之交)의 동갑이 되어 활동해주기를 바라는 게 ‘동년기자단’의 작명 취지입니다.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은 이른바 동기상구(同氣相求) 동성상응(同聲相應), 마음이 맞아 서로 찾고 친하게 모이고,의견을 같이해 서로 잘 통하는 사이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급제한 동년은 모두 우수한 인재입니다. 길이 사귀어야 할 벗이면서 한편으로는 발전과 성취를 다투는 경쟁상대일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동기생끼리의 경쟁이 선후배간 경쟁보다 더 치열합니다.

성삼문과 신숙주는 동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조가 단종을 몰아낸 이른바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성삼문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됐고, 신숙주는 세조의 편에 서서 새로운 왕업을 도왔습니다. 둘 다 세종 임금이 사랑하던 인재요 한글 창제에 힘을 보탠 집현전 학사였지만 삶의 행로는 판이했습니다. 동년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대비와 대립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은 저마다 다르므로 다른 것 속에서 같은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동공이곡(同工異曲), 같은 악공끼리도 곡조가 다르고, 재주가 같아도 문체에 따라 글의 빛깔과 결이 달라집니다. 동교이곡(同巧異曲)이나 동교이체(同巧異體)처럼 재주는 한가지인데 창작물은 다르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따로 또 같이’를 이야기하지만 실상 더 중요한 것은 ‘같이 또 따로’입니다. 같은 것 같지만 다른 것이 세상을 다채롭게 하고 서로 잘 어울리게 하는 조화의 요소가 됩니다. 논어의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말을 음미해봅니다. 군자는 남들과 잘 어울리되 같지 않지만 소인은 남들과 같은데도 어울리지 못합니다. 군자는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과 정체성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어느 학자는 ‘엇비슷하다’는 우리말에 화이부동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어긋났는데 비슷하다거나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는 뜻이니 이런 말을 만들고 쓰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다원주의를 받아들이는 관용이나 포용 공존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만든 말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새로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일 때, 상대와의 협상에 진전이 없을 때 흔히 쓰는 구동존이(求同存異)에도 ‘엇비슷’이 들어 있습니다. 차이점을 인정하거나 뒤로 미루고, 같은 점부터 먼저 확인하고 추구하는 자세입니다.

<장자> 천하편에 나오는 대동소이(大同小異)는 흔히 그게 그거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실은 ‘크게 보면 서로 같으나 작게 보면 각각 다르다’는 뜻입니다. 크게 보면 같다가도 작게 보면 다르니[大同而與小同異] 이것을 小同異라 하고, 만물은 모두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니[萬物畢同畢異] 이것을 大同異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대동은 기르고 키우고 소이는 가꾸고 지켜야 합니다. 소이가 모이면 또는 소이가 모여야만 대동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천하가 번영하고 화평을 이루는 인류의 이상 ‘대동사회’입니다.

조선의 선비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시에 여러 색깔의 국화를 찬탄한 작품이 있습니다. “서리를 이기는 한가지 꽃인데/세상에선 너무 나누어 품평하지/색깔로만 같다 말다 그러지 말고/우리 집 둘러싼 여러 색 국화를 보소.”[好是凌霜一樣花 世間常苦品題過 休將形色分同異 且看交開繞我家]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렇게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과 배려를 통해 조화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잘 알아야 하며 학문과 견식이 넓고 높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나 문장이 뛰어난 사람을 대방가(大方家)라고 합니다.

<장자> 추수(秋水)편에는 끝없는 바다를 처음 보고 놀란 황하의 신 하백(河伯)이 북해의 신 해약(海若)에게 “이제 선생의 끝없음을 보게 되니 내가 선생의 문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길이 대방가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다는, 이른바 망양지탄(望洋之歎)입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발행하는 이투데이의 주소는 대방동입니다. 대방(大方)은 큰 네모, 곧 대지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고 믿어왔습니다. 노자 도덕경 41장에는 “큰 네모는 귀퉁이가 없고 큰 그릇은 더디게 이루어지며 큰 음은 소리가 희미하고 큰 형상, 곧 도는 형체가 없다”[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발족한 기자단을 대방동년(大方同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동갑인 사람들의 한가지 마음과, 화이부동의 자세와, 대방가를 지향하는 노력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 마음과 자세는 동년기자단을 비롯한 특정 단체나 모임에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두루 중시하고 추구해야 할 보편타당한 덕목이라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는 잡지에 굳이 이 글을 써서 싣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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