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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어디로 갈까

기사입력 2018-03-07 09:17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 요즘. ‘방콕’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분들 계신가? 부부가 혹은 가족끼리 또는 동성 친구끼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곳, 게다가 ‘먹방’까지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볼까 한다.

경춘선 기차여행[김유정역]_실레마을 이야기길 따라 점순이를 만나다

7호선과 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만남의 장, 상봉역. 춘천 가는 기차는 대성리, 가평을 지나 출발한 지 72분 만에 멈춘다. 내린 곳은 근대문학 ‘봄봄’, ‘동백꽃’의 산실, 실레마을이 있는 김유정역. 역사 맞은편으론 ‘비단으로 병풍을 두른 산’, 금병산이 포근하게 안아준다. 역사를 빠져나와 약 5분 정도 걸었을까. 버선발로 마중 나온 ‘점순이’를 만난다.

“그새 좀 컸는가? 반갑단 말보다 다짜고짜 키부터 재 보는데 잘 봐야 내 겨드랑 밑에서 넘을락 말락. 또 고갤 숙일밖엔 도리가 없다. 딸이 더 자라야 성례를 시켜줄 수 있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일만 시키는 장인, 아버지를 못마땅해하면서 나를 충동질해대는 점순이, 반발하다가도 끝내 이용만 당하는 나는 정말 어리석은 머슴이던가. 빙장님, 올가을엔 꼭 성례를 시켜줘요. 더 이상은 못 참아요. 장인의 약속을 반신반의하며 뒷골 콩밭으로 향한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로 안 그래도 고즈넉한 잣나무, 소나무 숲 사이 길은 더없이 폭신폭신. 그 순간이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녀들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결코 머물 수 없는 눈웃음의 그녀들이.”

아주 치명적이었던 들병이들 ‘눈웃음 길’을 스치듯 빠져나오면서 그 들병이 꾐에 빠졌던 근식이가 걷던 그 ‘한숨사연 길’을 돌아본다. 오죽하면 자기 집 솥을 훔쳤을까? 세월의 무게만큼 겹겹이 쌓인 잣나무 가지들을 밟고선 심호흡 여러 번에 팔다리도 죽죽 펼쳐본다.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가장 많이 뿜어낸다지 아마. 이윽고 마주한 두 갈림길. 어느 쪽을 택할 텐가? 동백꽃(생강나무) 길 따라 정상도 좋겠고 산골나그네 길 따라 터벅터벅 걸어도 좋겠고. 오늘은 기어코 산골나그네가 병든 남편을 끌고 사라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가볼 텐가?

김유정역 실레마을에선 김유정문학촌을 구경하고 난 다음 둘레길인 ‘실레마을 이야기길’을 반드시 한 바퀴 산책해야 한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의 그곳, 인쇄박물관이 지척에 있는데 많은 분들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김유정 선생이 귀향해 야학을 일으켰던 곳, 금병의숙(錦屛義塾)에서의 인증샷도 의미 있겠고 기차카페로 개조된 폐김유정역에서 타임킬링도 가성비 있다. 인근엔 레일바이크 장도 있고. 또 '먹방'도 빠질 수 없으리. 춘천 하면 닭갈비 아닌가? 역전에서 ‘점순네’를 찾으시라.

꽃 피고 새 우는 고궁 산책[창덕궁]_덕혜옹주가 남긴 마지막 메모를 찾아서

4월 어느 날. 마침 하늘빛은 미세먼지를 걷어내고 바깥 기운도 그리 차갑지 않다. 어제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아내를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막상 어디로 가야 하나? 눈치를 살피는데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가잔다. 더 어려운 숙제라고?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반겨주는, 다리품 많이 팔지 않아도 되는,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어떨까.

1405년 태종 때 제2의 왕궁으로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한 곳. 마지막 임금 순종 때까지 약 270여 년간 왕조의 정궁 역할을 한 곳. 그나마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시크릿 가든’인 후원이 있어 자연과의 조화미와 전통의 조경미를 만끽한 적 있으신지. 그러나 오늘의 관심사는 따로 있다.

바로 낙선재! 경복궁의 건청궁이 그러하듯 창덕궁 내 단청을 하지 않은 유일한 곳. 여인의 '비운' 같은 게 서려 있다고나 할까?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가 말년을 보낸 곳(정확히는 낙선재의 우측 끝에 있는 수강재). 두리번두리번 돌아서 드디어 만난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어쩌면 혼신의 힘으로 써내려간 것일까. 그녀의 마지막 편지(메모)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옹주는 1989년 4월 12일, 향년 77세로 이곳 낙선재에서 운명한다. 새들이 우짖고 꽃들이 피어나는 4월이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 올봄에 방문하신다면 한 가지 추가할 곳이 생겼다. 작년 말에 재개관한 창경궁 대온실이 바로 그곳. 후원 쪽으로 가면 이웃한 창경궁과 연결되는 출입구가 있는데 지척이니 함께 둘러보면 ‘엄지 척’ 장담할 수 있다.

세종마을 도보여행_이 골목 저 골목 헤매기 좋아라

세종마을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부 지역을 말한다. 경복궁 서편에 있다 하여 북촌에 대비해 ‘서촌’으로 소문난 곳이다.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입구를 나와 대로를 따라 걷노라면 이윽고 우리은행 건물이 나타난다. 도보여행은 여기서부터 ‘딱’이다.

좌측 골목길로 접어들면 세종마을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인 ‘이상의 집(터)’이 나온다. 백부의 권유로 건축과에 입학한 시인은 1929년 3월, 수석으로 졸업하는데 화가의 꿈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고. 얼핏 카페 같은 이곳엔 비밀의 문이 있는데 그곳을 통하면 잠시나마 그와 호흡할 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올라선 다음 이내 날개를 펼쳐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훨훨 날아올라보라. 이걸 놓치고선 여길 다녀갔다 말할 수 없으리.

할머님과 며느님께서 푸근한 미소와 여유로 차근차근 귀엣말하시듯 이곳저곳 소상히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는 헌책방’이 다음 코스다. 고인이 된 창업주 할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부부의 가운데 이름을 따서 상호로 정했다는 곳, 대오서점이다. 분수를 아는 즐거움 정도로 해석되는 가훈 이야기, 다락방 사연, 풍금 이야기, 드라마 ‘상어’의 주인공(손예진과 김남길) 뒷담화(둘은 흥행작 ‘해적’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까지 줄줄 풀어놓으셨는데 그동안 세월이 좀 흘렀나보다. 없던 액세서리 진열대도, 사진 촬영금지 팻말도 보이고 그새 입장료(2500원)도 훌쩍 인상됐다. 오늘따라 주인장도 안보이고 대신 시니어 알바께서 맞이해준다. 가수 아이유가 앨범사진을 찍었다는 상업적 내음 물씬 나는 설명엔 노코멘트할밖에.

좀 걷다 보면 공통으로 생각나는 건 뭐? 때맞춰 신기하게 나타난 곳이 ‘통인시장’이다. ‘골라먹는 맛과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잡도리 쉼터 파라솔 아래에서 ‘셀프’로 즐기기도 편하다. 먼저 1인 5000원 하는 도시락을 구입하면 되는데 엽전 열 냥을 제공하니 하나에 500원인 셈. 그 복잡한 골목길에서 기다랗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 박노수미술관을 지나서 수성계곡 물소리를 벗 삼아 기린교를 건너는 상상도 분명 힐링이다. 다리품을 팔아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북한산은 물론 북악산 아래 청와대, 경복궁 일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 편리한 역세권에 세종대왕, 정철을 비롯해 수많은 다양한 인물들이 살다 간 흔적이 이리도 집약된 곳 또 어디에 있을까? 종로구에 신청하면 해설사와의 동반 투어도 가능하니 봄날엔 놓치지 마시라. 서촌에 바람이 부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봄날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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